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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스승의 전수를 통해 참된 명상을 발견하라,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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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으로 가는 길은 좁고 멸망으로 가는 길은 넓으니 많은 자가 그곳으로 가리라』 […] 그곳으로‍ 가는 길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세속적 욕망‍ 유혹과 정반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 온갖 유혹과 어려움을‍ 겪으며 세상을 살아가야‍ 하지만 진흙 속에‍ 태어났어도 그토록‍ 순수하고 깨끗하며‍ 향기로운 연꽃처럼 절제와‍ 순수함을 지켜야 합니다.

사람을 그렇게 겸손하게‍ 만드는 것은 뭘까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우주의‍ 거대하고 방대한 지식이죠. 가령 초등학교에서‍ 우리는 4 더하기 4는 8,‍ 3 더하기 3은 6과‍ 같이 숫자를 더하는‍ 법을 배웁니다. 나중에는 우린 토마토‍ 한 개가 3달러라는 등의‍ 더 복잡한 걸 배웁니다. 토마토 세 개를 사면‍ 얼마죠? 그러다가 나중에 누가‍ 나한테서 다시 토마토‍ 하나를 사면 수가 줄어서‍ 두 개만 남게 됩니다. 이제 난 얼마를 내고‍ 그 사람은 얼마를 내야 하는지 등 온갖 복잡한 문제를 배우죠. 이 수수께끼를 풀고‍ 아주 뿌듯한 기분이 들면‍ 집에 와서 부모님께‍ 우리가 학교에서 얼마나‍ 뛰어난지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아무 문제 없이‍ 토마토 하나를 줄여서‍ 두 개를 만들 수 있고‍ 숫자를 사용하고 운용할 수 있으니까요. 매우 뿌듯함을 느끼지요. 그것이 우리의‍ 작은 성취이며 매우‍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나중에 고등학교나‍ 대학에 가면 이런‍ 작은 자부심은 저절로‍ 사라지는데, 이게 아주‍ 하찮은 것을 알아서죠. 그렇지 않나요? 예 마찬가지입니다.

수행을 아주 조금 한 이가 자랑은 많이 하죠. 자기에게 초능력이‍ 있다고 알리고 공개적으로 보여주거나 관련된 책을 쓰며 사람들에게 돈을 받아요. 물론 이것은 최고의 놀이이며 이걸 잊을 수가 없어요. 그러나 아주 높은 수준의 수행자들은 더는 이런 것을 하지 않아요. 그 힘을 쓰거나 심지어‍ 쓰도록 강요받는다면‍ 그들은 수치심을 느낍니다.

모세 이야기를 기억해요? 그가 쫓겨나기 전에‍ 잠시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광야로 갔고 죽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신을 보았고‍ 불꽃을 보았으며‍ 천둥소리를 들었습니다. 기억하나요? 그것은 내적 (천국의) 진동이자 내적 (천국의) 빛입니다. 이 법문을 수행하면‍ 우리도 알게 됩니다.

전에는 『왜 신의 음성이‍ 천둥 같을까?』 하면서‍ 이 말의 의미를 몰랐죠. 『하나님은 왜 큰 불꽃처럼‍ 나타나실까요?』 아주 무섭게 들려요. 하지만 불은 불이 아니고‍ 천둥은 천둥이 아닙니다. 그 천둥소리는 너무‍ 위로가 돼서 계속‍ 듣고 싶어집니다. 우레가 치며 요란한‍ 바깥의 천둥이 아니라 온갖 질병과 무지와 오만, 온갖 불행을 치유하는‍ 내면의 천둥입니다. 하지만 알려 드리자면,‍ 내면의 천둥소리조차‍ 여러분이 들어야 할‍ 가장 높은 (내적 천국의)‍ 소리는 아닙니다. 단지 높은 등급의 초심자가 듣는 소리의 하나이며 더 매혹적이고‍ 더 많은 지혜를 주는‍ 다른 소리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어요. 그 안에 모든 게 있어요.

무슨 얘기를 어디까지‍ 했는지 잊어버렸네요. 늙어가나 봐요. 뭐였죠? 모세요. 이제 모세가 왕에게‍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기적을 과시했죠. 그는 막대기를‍ 뱀으로 만들었어요. 오 그러고 나서‍ 그는 회개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신의 힘을 남용한 저를‍ 용서하소서』라고 했죠. 어쨌든 그것이‍ 시작할 때 여러분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예수님 이야기를‍ 기억하나요? 그가 결혼식 연회에 갔는데,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기꺼이 아주 자랑스럽게‍ 즉시 그렇게 했을까요? 아뇨, 그러지 않았어요. 『왜 이 일을 사람들에게‍ 알리셨습니까?』라며‍ 그는 심지어 어머니를‍ 약간 책망하기도 했어요. 그렇지 않았나요? 예 그는 어머니가 너무‍ 정이 많다고 나무랐어요… (공표했다고요?)‍ 예 실제 말이 너무 많았죠. 네 맞아요. 사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말이 너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가 어머니를 존경했고 어머니가 이미 모든 것을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했어요. 그는 이런 상황에‍ 내몰렸고 정말‍ 당황했습니다. 이것이 현자의 태도입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할 때, 그들은 매우‍ 부끄럽게 여깁니다. 뽐내는 게 아니라요. 이것이 참 스승과 가짜‍ 스승을 구별하는 방법이죠.

가짜 스승은 늘 자기의‍ 작고 사소하며 기적적인‍ 힘을 광고합니다. 참 스승은 절대 안 하죠. 해야 한다면‍ 비밀리에 합니다. 제자들만 알고 있고‍ 필요한 경우에만 하죠. 제자들을 어떤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고 병을 낫게 하고‍ 정신적으로 돕거나‍ 그들의 영적‍ 진보를 돕기 위해서요. 제자들은 스승이 얼마나‍ 위대한지 아주 잘 압니다.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오직 그들만 알죠. 예수님이나 부처님 생전에‍ 사람들은 그분들이 얼마나 위대한 스승인지 알았기 때문에 신처럼‍ 숭배했던 것도 당연해요. 오직 그들만 압니다. 그래서 외부인은‍ 그들이 자신의‍ 스승을 신처럼 숭배하고‍ 평범한 사제와 승려‍ 또는 소위 선지자라는‍ 사람들보다 더 크게 숭배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질투하고‍ 분노하게 되었죠. 그래서 온갖 공격과‍ 해치는 일을 했어요.

단지 이 참 스승들이‍ 일반 대중에게 자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많은 신통력이‍ 있는지를 보여주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달려갔을지 상상할 수 있겠죠. 더는 무언가를 하거나 많은 돈을 쓸 필요 없이‍ TV에 나가 묘기를‍ 조금 부리면 돼요. 그걸로 충분합니다. 아니면 수천 명 앞에서‍ 병자를 고치면‍ 그것으로 그들 사명은 끝날 겁니다. 모든 사람이 그들의‍ 발 앞에 모일 테니‍ 더는 광고할 필요도 없고‍ 아주 열심히 일하거나‍ 이곳저곳‍ 달려갈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죠. 할 수도 없어요. 그들은 그럴 처지가‍ 못 되고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겸손합니다. 그런 일을 한다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오직 제자들만‍ 스승이 얼마나‍ 위대하며 어떤 힘을‍ 지녔는지 압니다.

예수나 부처님 같은‍ 진정한 스승 또는 그런 등급에‍ 도달한 사람에게 이 우주의 모든 것은 그들의 것입니다. 온 우주가 그들의‍ 집입니다. 모든 생명과 풀 한 포기도‍ 그들에게 속하며‍ 그들의 뜻을 따릅니다. 하지만 어떤 것에도 이 권능을 행사하지 않죠, 그들은 신의 품성을‍ 지녔으니까요. 신은 자유의지와 자유이며,‍ 살며 살게 하고 사랑하며 오직 사랑뿐이니까요. 압박도 강요도 통제도 암시도 없고 속임수도 없으며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어떤 힘도 사용하지 않지만,‍ 그들의 지혜에 호소하여‍ 스스로 깨어나도록 지혜와 논리만 사용합니다. 어떤 힘이나 최면술이‍ 아니라 스스로 깨어납니다. 스승은 최면을 걸거나 온갖 권능과 기적을‍ 행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요, 그들은 신에게서 왔고 신은 완전한 자유이니까요. 신은 사람들의 일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신은 그들의 일에 함부로‍ 참견하지 않아요. 신은 여러분이 어떤 길을‍ 따르고 어떤 생활방식을‍ 선택하며 어떤 영역에‍ 들어가고 싶은지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합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면‍ 신께서 문을 엽니다. 지옥에 가고 싶다면‍ 그것 또한 무료입니다. 그러나 천국으로 가는‍ 길은 가기가 어려운데‍ 『생명으로 가는 길은 좁고 멸망으로 가는 길은 넓으니 많은 자가 그곳으로 가리라』‍라고 했기 때문이죠. 신께 가는 길이 왜 이렇게 좁을까요? 어떤 사람은 그 길이 면도날처럼 너무 좁아 걷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세속적 욕망‍ 유혹과 정반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수영해야 하지만,‍ 동시에 옷이 젖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온갖 유혹과 어려움을‍ 겪으며 세상을 살아가야‍ 하지만 진흙 속에‍ 태어났어도 그토록‍ 순수하고 깨끗하며‍ 향기로운 연꽃처럼 절제와‍ 순수함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옥에서 성인이‍ 되는 법입니다.

불교에 한 성인이 있는데, 전설에서 그는 지옥에‍ 있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서원을 세웠기에 영원히‍ 지옥에 있다고 합니다. 지옥은 매우 뜨겁고 불과 온갖 형벌로 가득하니‍ 아무도 지옥에 살 수 없을‍ 거라고 상상합니다. 어떻게 성인 즉 부처의‍ 바로 아래 등급인‍ 보살이 지옥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까요? 이는 자비의 힘과‍ 사랑의 힘으로‍ 가능하며; 어떤‍ 해악과 함정에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평범한 사람이‍ 지옥에 간다면 즉시‍ 화상을 입고 그 열기를‍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인이나 성인의 길을 수행하는 사람은 가서 방문해도 해를 입지 않습니다. 이는 스승의‍ 보호력 덕분입니다. 신의 가호를 뜻하죠.

우리는 모두 내면에 계신‍ 신 덕분에 우리 모두에게‍ 신이 있음을 압니다. 성경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왜 신을‍ 찾지 못했을까요? 우리가 너무 바빠서입니다. 우리는 신과 접촉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교회에 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노래도 많이 부르죠. 또한 성경의 말씀을‍ 살펴보느라 바쁩니다. 그렇지 않으면‍ 노래를 틀리거나 의식을 잘못하여 사제를 화나게 할 겁니다. 우리는 항상 외부의‍ 일로 바쁘므로 신과 친밀한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을 못 찾아요. 그것이 유일한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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