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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죄인을 위한 용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 2부 중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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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에드워즈는 정평 있는 미국의 철학적 신학자로 1703년에 코네티컷의 유명한 회중파교회 목사 집안에 태어났습니다. 1716년, 13세 무렵에 에드워즈는 예일 대학교에 입학하여 존 로크와 아이작 뉴턴의 저서에 매료되었고 자연철학과 심리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조나다 에드워즈의 조부 솔로몬 스토다드는 『코네티컷 계곡의 교황』으로도 알려진 매사추세츠주 노샘프턴 회중파교회의 저명한 목사였는데 1725년에 이 젊은 신학자는 이 교회를 물려받았습니다. 에드워즈 씨는 미국의 대각성 시기, 즉 유럽과 미국의 영국식민지에 일어난 일련의 기독교 부흥운동인 복음주의 부흥 시대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절대 주권과 함께 미학과 하나님의 거룩함을 강조한 설교와 신학 서적을 집필했습니다. 이 신학자는 신성한 덕을 창조주의 사랑과 자비의 모방으로 여겼습니다. 이 미국 철학자에 따르면 행복은 신의 창조와 구원을 묵상하는 데서 오며, 진정한 미덕은 신과 모든 존재에 대한 자비라고 정의하며 자기애와 가족 사랑, 국가사랑과 별 상관이 없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저서들은 종교적 강력함, 지적인 철저함과 도덕적 열정을 사랑이 모든 종교의 근원이며, 믿음이 우리 존재의 본질이라는 믿음과 결합한 자료로 오늘날 연구됩니다. 이제 조나단 에드워즈의 『가장 큰 죄인을 위한 용서』라는 설교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설교는 영혼이 하나님의 다스림과 신법의 실상을 각성하게 하며, 또한 우리의 모든 죄악에서 보호하는 날개인 무한한 자비를 간청합니다.

가장 큰 죄인을 위한 용서

시편 25장 11절: 주님,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님 이름으로 사하여 주옵소서. 시편의 일부 구절을 보면 다윗이 고통과 위험의 시간에 시편을 지었음이 분명합니다. 이는 특히 15절과 그다음 절에 나타납니다. 「주님만이 이 발을 올무에서 벗겨주시기에 저는 언제나 주님만을 바라봅니다」

그의 고통은 자기 죄를 생각하게 하고, 죄를 고백하게 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게 하니 고난의 시기에 그렇게 하지요. 7절을 보십시오. 「내가 젊은 시절에 저지른 죄와 반역을 기억하지 마소서」 18절을 보십시오. 「내 괴로움과 근심을 살펴보시고 모든, 내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다윗이 용서를 간청할 때 어떤 논거를 드는지 시편에서 알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용서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의로움이나 선행으로 말미암거나 자신의 죄에 대한 어떤 갚음으로 인한 용서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의로움이 정당한 핑계가 된다면 다윗은 최대한 간청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과 제약 없는 온정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 언약의 충실함의 영광으로 용서를 빕니다.

2. 다윗은 자비를 위한 논거로 자신의 크나큰 죄를 주장합니다. 자신의 의로움이나 죄가 작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죄를 갚을 만큼 많은 선행을 했으니 자기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지 않고 자기 죄가 작으니 하나님이 자신에게 화낼 이유가 없다거나, 자기 죄가 크지 않으니 당신이 저를 나쁘게 생각할 어떤 명분도 없다거나, 자기 죄는 그렇지 않으니 당신은 그것을 충분히 간과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반대로 말합니다. 내 죄가 크니 용서하소서. 그는 자신의 죄가 아주 크며 작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자기 죄가 매우 크다고 생각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는 어찌 이렇게 용서를 위해 간청할까요? 죄가 더 클수록 그는 더욱더 용서가 필요합니다. 이런 말입니다. 내 죄가 매우 커서 벌을 감당할 수 없으니 죄를 용서해 주소서. 내 죄는 너무 커서 용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지 않는다면 제 입장이 무척 비참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크나큰 죄를 이용하여 용서를 간청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구원을 청할 때 큰 불행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거지가 빵을 구걸할 때 극심한 가난과 필요성을 간청할 겁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이 동정을 구할 때 극심한 상황보다 더 적절한 핑계가 있을까요? 하나님은 이런 간청을 허락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비참함 외에 어떤 것에도 연민을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죄인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당신 연민이 필요해서 불쌍히 여기십니다.

교리

참으로 하나님께 자비를 구한다면 우리의 큰 죄는 용서에 장애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장애가 된다면 시편에 보듯이 다윗이 용서를 구함에 그것을 이용하지 않을 겁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려면 이런 것이 필요합니다.

1. 우리 불행을 보고 자비의 필요성을 느껴야 합니다. 자기 불행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지 못합니다. 신의 자비라는 개념은 불행한 자에게 바로 하나님의 선함과 은총입니다. 대상의 불행이 없다면 자비는 드러날 수 없습니다. 만약 불행이 없는 자비를 생각하거나 재앙 없이 동정은 모순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이 불행함을 먼저 알지 않는 한 자신이 자비의 대상임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경우가 아니면 하나님의 자비를 구함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이 분노의 자식임을 알아야 합니다. 법은 그들에게 불리하고, 그들이 그 저주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일시적인 즐거움이 있든지 죄책감이 자신을 비참한 생명체로 만듦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화내시는 한 그들은 비참하고 미완성의 피조물일 뿐입니다. 그들은 힘이 없고 죽어야 하며 하나님이 돕지 않는 한 영원히 그렇습니다. 남들이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임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영원한 불행의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지 않으시면 그들은 거기 빠져야 합니다.

2. 자신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베풀 가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려는 자는 채권자가 아니라 거지로 갑니다. 그들은 단지 자비와 최고의 은총을 위해 가고, 당연히 요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스러운 율법에서 경고하듯이 하나님과 함께함을 알아야 합니다.

바른 태도로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자는 주님이 엄격하게 결점을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목에 밧줄을 매고 자비의 발치에 있는 먼지 속에 누운 것처럼 자신이 완전히 무가치함을 느낍니다.

3.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자비에 대한 모든 희망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고 그분이 한 일, 그분의 고통에 대한 이해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이름은 하늘 아래 사람들 사이에 그리스도란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입니다.

그분의 피로 모든 죄가 깨끗해지고, 그분은 매우 훌륭하시며 그분 안에 있는 모든 죄인은 용서받고 받아들여질 겁니다.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러 가서 동시에 자비의 희망이 없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비를 얻을 희망이 있기에 그들은 하느님께 자비를 구하러 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바른 방식으로 구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통하거나 그분의 구원과 그 충분함을 생각해서 모든 희망을 가집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자비를 구한다면 그들 죄의 크기는 용서를 받는 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죄가 언제나 너무나 많고 크며 더 심해진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선 그들을 용서함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으실 겁니다. 그것은 이렇게 생각하면 분명해집니다.

1. 하나님의 자비는 가장 작은 죄와 같이 가장 큰 죄를 용서함에도 충분합니다. 그분 자비는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자비가 무한하기에 큰 것과 작은 것은 모두 훨씬 넘어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한히 위대하시니 왕과 걸인 모두 보다 훨씬 위에 계십니다. 그분은 똑같이 가장 높은 천사와 가장 하찮은 벌레보다 훨씬 높이 계십니다.

하나의 유한한 척도는 다른 것보다 무한한 정도에 더 가깝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비는 무한하기에 또한 하나의 죄와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가장 작은 하나의 죄가 하나님의 자비를 넘어서지 않는다면 가장 크거나 많은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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